침묵
- 2017년 9월 26일
- 3분 분량
믿거나 말거나 나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서원 기도(사사 입다는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다음과 같이 드렸다. 적군인 암몬을 이기게 해주신다면 처음으로 자신을 마중나오는 사람을 제물로 드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를 마중나온 사람은 무남독녀인 자신의 딸이었다. 결국 입다는 딸을 제물로 드리게 되었다.)를 하고 들어왔다.
그것은 내 굳은 결의(다른 대학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원서조차 넣지 않았던 것)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일이었다. 나의 기도는 다음과 같았다.
"하나님께서 이 길을 허락하신다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생활하겠습니다."
지금보면 굉장히 무모하다.(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서원 기도를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깊게 생각해보길 바란다.) 19살의 나는 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뒤에 대학생활은 불쏘시개 위에서 춤을 추는 듯 위태롭고 고통스러웠다. 늘 불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늘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하지만, 굳이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게 만드는 그런 세월인 것이다.
학교를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도 있었고 실망감이 극에 달할 때에는 신과의 약속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초야에 묻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지만 나는 간이 참 작은 사람인지라 인내에 인내를 이루라는 말씀대로 꾹 참았다.
나는 이 곳에서의 생활에 항상 최선을 다해야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만한 언행은 삼갔고 늘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학업에 매진했다. 그러는 중에 정말 별의별 일들이 많았다.
장학금을 받아야 했기에 무례하기 짝이 없는 교수에게 굽신거렸던 일이나,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맞은 일이나, 목사에게 임금을 제 때 받지 못하거나, 소위 말하는 '믿는 사람들'에게 크게 화를 입었던 일 등이 있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시간이 나면 상세히 써보려고 한다. 내게는 아직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상처를 직면하는 것이 확실한 치료법임을 나는 안다.)
내가 그들에게 크게 실망하고 가슴이 아파 혼자 울고 있을 때 누구도 내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과 성경 말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은 내가 몇날며칠을 세아릴 수 없을 만큼 베개를 적시고 잠들 때에도 침묵하셨다. 밤낮으로 고통에 차 입에는 쓴맛이 돌았고, 심장에서 피를 흘리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잠잠했다.
내 기도는 누구보다도 간절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게 해달라고, 내 가슴을 갈갈이 찢어놓은 악인들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내가 알아챌 수 있는 응답은 없었다. 내 심정은 요즘 읽고 있는 책에 나오는 다음 구절과 정확히 같았다.
"그런데 얄궂게도 진정한 기도의 핵심인 간절함 때문에,
응답되지 않은 기도가 우리에게 겁나고 뒤틀리고 혼란스러운 것이 된다.
간절히 필사적으로 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은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밧줄 끝에 매달려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밧줄을 끊어 버린다면 그 고통은 훨씬 가중될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다름 아닌 하나님일 경우 그 고통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은 그렇게 매정한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응답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나는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져 있었다. 그 때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글거리는 복수심은 여전했지만, 하나님은 천천히 세밀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왜 사람들이 배신을 하는줄 아니?
그건 바로 사람은 항상 변하기 때문이야.
그들이 평생 약속을 지키는 일은 없단다.
그게 그들의 속성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나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낮의 해와 밤의 달도 결코 너를 해치지 못한단다."
나는 울컥했다. 내가 고통에 피를 흘리고 있을 무렵에도 절대자는 내 옆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고 연민의 감정을 가지라고 말해주셨다. 인간들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이었다. 내 잘못이 컸다.
그래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정의를 원했다. 내가 고통 받은 만큼 그들도 고통받아야 한다는, 소위 말하면 '나'식 함무라비 법전이었다. 그리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고 하나님께 덤볐다. 공의의 하나님이라면 이걸 그냥 넘어가실 수 없다고, 나는 끝까지 항소할 것이라 선포했다.
하나님이 보실때 내가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그러나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그에게 모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응답받았다. 나의 행적에 잘못이 없었음을 그리고 그들의 불법한 행위에 대해 그들이 대가를 치루게 될 것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통쾌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는 초조했다. 이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일일까? 그런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는 한편,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값 없는 은혜라고. 그런 은혜는 없다.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시던 것처럼, 값이 싼 은혜만 있을 뿐이다. 모든 것에는 댓가가 따른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손을 땠다.
나는 성직자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주어진 역할에 제법 충실하고 있다. 최근 들어 노력하는 사항은 마음을 다해 미워하지 않는 일이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이 없다. 그래서 기대치를 현저히 낮춘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사람이 내게 해를 끼쳤을 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오프라 윈프리가 말한 것처럼 '그 사람이 있든 없는 그는 내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아니다'(그녀는 이것을 용서라고 말했다)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침묵은 고통스럽다. 나의 하나님은 무서울정도로 잠잠하다. 하지만, 내가 제 풀에 지쳤을 때 비로소 나를 달래준다. 사람이 무엇이길래 신은 이렇게 애정을 기울이시는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좋다. 자기 전에 천국가기 전까지 늘 나와 함께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한다. 그가 함께 있으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선물더미(약간의 함정도 포함된)라고 생각하게 된다. 무섭지 않으니 몸을 맡길 수 있다, 그렇게 사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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